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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다감한 이야기

김밥의 세계

by BonaRosa 2024. 1. 30.

 

치앙마이 여행 중 마사지 스쿨에 등록했다. 점심 식사가 포함된 프로그램이라서 수강생과 강사가 밥을 같이 먹는다. 마사지를 가르쳐 주는 AWii가 고른 점심 메뉴는 태국인이 좋아하는 팟 까파오무쌉(다진 돼지고기와 태국 바질을 넣어 볶은밥)이다. 이날은 스위스에서 온 S도 같이 먹었다. 점심을 먹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게 되었다. 점심은 맘에 들었는지? 태국 음식을 좋아하는지? 네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이냐? 등등

그런데 S가 한국 음식 중에 김밥을 안다고 했다. 스시와 비슷한 것 같은데 좀 다른 것 같다고어떻게 만드는지 물어봤다.

나는 잘 안 되는 영어와 손짓으로 재료 준비며, 김밥 마는 방법을 알려줬다. ‘김밥을 말다는 의미가 잘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때 알았다. 김밥은 김치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 될 수 있겠다는 것을. 미국에서 ‘K-푸드 인기에 힘입어 냉동 김밥을, 줄을 서서 사 간다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냉동 김밥이 인기 있는 이유를 어느 매체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해외에서 K-드라마, K-팝 등으로 한국 식문화에 관심을 두게 되며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한국 음식을 접했다가 이제는 익숙해져 섭취 횟수가 증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어쩌다 사장 3>의 배경이 된 한인 마트에서도 없어서 못 파는 것이 김밥이었다. 김밥은 간편하게 먹을 수 있고, 속 재료를 잘 구성하면 영양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만능 음식이다.

 

나는 김밥에 진심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만들어 주고 싶은 음식 중에 하나다. 딸이 체험학습 가는 날에도, 친구들이 놀러 온다고 했을 때도 기쁜 마음으로 김밥을 준비한다. 밖에 나가면 김밥이 천국이지만난 나의 김밥을 고집한다. 김밥은 간편하게 먹을 수 있지만 만드는 과정에 손이 많이 간다. 나는 사랑과 정성으로 김밥을 싼다.

 

미리 말해 두지만,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달인들처럼 재료 하나하나를 신경 쓰지는 못한다. 집에 있는 재료를 활용하여 정성껏 만드는 것이 다이다. +밥이기에 밥과 김이 제일 중요하다. 먼저 압력밥솥에 밥을 짓는다. 다시마가 집에 있으면 다시마를 넣는다. 이것 하나로 윤기가 잘잘 흐르는 더 맛있는 밥을 지을 수 있다. 이때 살아있는 밥알이 중요하기 때문에 질면 절대 안 된다. 김은 두 번 이상 구운 김밥용 김을 구입한다. 김을 사면 보통 10장이 들어있기 때문에 10줄의 재료를 준비한다. 단무지와 우엉은 세트로 묶어 파는 것을 사면 편하다. 우엉은 약방에 감초처럼 김밥을 맛나게 하는 숨은 공신이다. 계란 5개를 풀어 계란지단 만들기에 특화된 사각 팬에 두껍게 부쳐서 식힌다. 적당히 식으면 10등분 한다. 햄과 맛살은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것처럼 김밥 재료 세트에 포함된 경우가 많다. 햄은 팬에 살짝 익혀 사용하고, 맛살은 개별 포장한 것을 반으로 잘라 쓴다. 햄과 맛살이 없을 때는 어묵을 맵게 볶아서 사용하면 좋다. 매운 어묵이 밥에 바로 닿으면 밥이 벌겋게 물드니 깻잎을 깔고 어묵을 올리면 맛도 좋고 깔끔해 보인다. 만약 김밥 만들고 매운 어묵이 남았다면 충무김밥처럼 먹어도 된다. 초록 담당으로는 시금치와 오이가 적당하다. 이도 없다면 부추(정구지)가 쓰이기도 한다. 나는 주로 오이를 사용한다. 오이를 세로로 다른 재료와 비슷한 크기로 자르고 소금에서 20분 정도 절인다, 오이를 사용할 거면 시간상 오이를 먼저 절여놓고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당근도 빠질 수 없다. 당근을 채칼로 썰어 설탕을 조금 넣고 기름에 살짝 볶는다. 재료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말아 볼까나.

 

예전에는 집마다 김밥을 마는 대나무 김발이 하나씩은 있었다. 우리 집에도 있었지만 잘 닦아도 왠지 좀 찜찜한 대나무 김발을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면서 과감히 비웠다. 김발 대체용품으로 종이호일이 꽤 괜찮다. 종이와 같이 김밥을 둘둘 말 수 있으니, 손의 힘이 더 잘 전달되어 단단하게 말 수 있다, 사용한 종이 호일은 남은 김밥을 통째로 휘뚜루마뚜루 보관할 때 딱이다.. 먹기 직전에 참기름을 발라 썰어 먹으면 방금 한 김밥처럼 맛있다. 만약 썰어서 냉장고에 보관했다면 김밥에 동그랑땡처럼 계란 옷을 입혀 구워 먹어 보길 추천한다. 뜨끈한 단무지가 더 달게 느껴지고 냉동 김밥도 해동해서 이렇게 먹고 싶어질 것이다. 강추!

 

제주도에 갔을 때 커다란 간판도 없었는데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 식당을 우연히 발견했다. 나도 그 식당에 반해 머무르는 동안 매일 찾아가서 내 지갑을 열었다. 딸과 아들, 엄마가 같이하는 소규모 식탁이었다. 소영이 만든 소정식, 규형이 만든 규정식, 소영과 규형의 모친이 만든 모정식이 전부이다. 밥상을 받아보니 진심이 보인다. 그리고 맛도 맛이지만 비주얼이 장난이 아니었다. 왜 이곳이 소문으로 오는 성지가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요즘 시대는 스토리와 인그램으로 통하는 세상이다. 나에게 소규모 식탁은 우연히 산책하다 발견한 보물찾기 선물이었지만 이곳에 온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 온라인 세상에서 자신이 찍은 맛있게 나온 사진과 스토리를 공유하고자 온 것이다. 물론 단순 호기심에 온 사람도 있겠지만. 자두(가수)가 부른 김밥이라는 노래에 예전에 김밥 속에 단무지 하나, 요새 김치에 치즈 참치가, 세상이 변하니까 김밥도 변해라는 노랫말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이 노래로 김밥의 대중화, 세계화를 예견했다니 대단하다. 노래처럼 세상이 변하니 김밥의 재료나 모양도 변천했다. 내가 사랑하는 김밥이 요즘 K-푸드로 사랑받아서 정말 기쁘다. 더 많은 사랑을 받으려면 세상의 변화에 맞게 또 변해야 한다.

 

김밥이 맛있어 보이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재료에 한국의 전통 색상인 오방색이 다 들어가기 때문이다. 김밥의 오방색은 계란지단과 단무지-(), 시금치 또는 오이-(), -(), 햄이나 맛살-(). 김과 우엉-()이다. 김밥의 조화로운 색으로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아 보자. 그리고 김밥 재료의 영양학적 스토리를 만들어 널리 널리 알리면 지금보다 더 사랑받는 세계인의 음식이 될 것이다. 나는 김밥이 어떻게 변화하면 좋을지 오늘, 이 글을 쓰면서 찾았다. 내가 아는 김밥의 세계가 더 커졌다.

다음에 태국 친구가 점심으로 ‘팟 까파오무쌉을 먹자고 하면 나는 자신 있게 내일은 김밥을 먹자!”라고 말해야지.

아니 내가 김밥을 만들어 준다고 할까? 난 김밥에 진심이니까.

 

집에 있는 재료를 활용해 만든 김밥. 밥, 계란지단, 단무지, 우엉, 어묵, 상추로 만든 김밥

#제주소규모식탁: https://blog.naver.com/osinlim/223320210426